눈을 떴다. 언제나 떠나기 싫은 마지막 날이다. 짐을 대충 정리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빨리 움직이고 싶진 않았지만 체크아웃 시간 전에는 방을 비워줘야 하기 때문에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얼추 짐을 정리하고 방 사진을 찍었다. 사실 맨 첫날에도 찍었던 것 같지만, 마지막 날에도 왠지 모를 아쉬움에 사진을 찍고 가게 된다.
방의 모습
사진을 찍고 나와 열쇠를 프론트에 맡기고 체크아웃했다. 체크아웃하고 코덴마쵸 역으로 걸어가려는데 횡단보도를 걸어서 건너는 비둘기를 만났다. 그것도 횡단 보도 밖으로 한번도 벗어나지 않고 앞으로 똑바로 걸어가서 매우 당황스러웠다. 내가 사람을 보는건지 비둘기를 보는건지.
횡단보도를 건너는 비둘기......?
아키하바라에 조금 머물다가 공항으로 이동하는 일정을 계획했다. 그런데 이동하려고 보니 도통 스이카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가방을 뒤적거려봐도 보이지 않길래 결국 표를 돈 주고 끊었다. 끊고 나서 불현듯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핸드폰 뒷 케이스를 열자 보이는 스이카의 친숙한 얼굴. 반쯤은 안심하고 반쯤은 왜 돈주고 표를 끊었나 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한숨을 내쉬며 아키하바라에 도착했다. 돈이 아슬아슬 하긴 한데 뭘 할까 고민 끝에 결국 아키하바라 이곳 저곳을 둘러 보기로 했다.
2월에 예약 잡은 아키하바라 워싱턴 호텔
정처없이 걸어 가던 내게 돈키호테 건물 1층의 꼬치고기집에서 나는 냄새가 매우 유혹적으로 달려들었다. 아침도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상태여서 배가 고팠던 나에게는 매우 자극적인 냄새였다. 어느새 줄을 서서 꼬치를 구매했다. 꼬치 종류는 다양한 고기가 있는데 나는 아마 소고기를 샀던것 같다. 처음에 뭐라 읽는지 몰라서 대충 시켰더니 영어로 대답해 주었다. 한자 너무 어려워! 커다란 종이 봉투에 담아주는데 종이가 그렇게 두껍진 않다. 일본은 돌아다니면서 먹지 않고 가게 앞에서 바로 먹거나 싸서 가져가서 먹거나 하는데 나는 딱히 먹으러 돌아갈 장소가 없었기 때문에 바로 앞에서 다 먹어치웠다. 한 입을 베어 물었더니 소금기가 입안에 가득 찰 정도로 꽤 짜다. 그래도 양념자체가 괜찮아서 그런가 맛있었다.
조금 짜지만 맛있었다
애니메이트에도 들렀다가 앙스타 굿즈를 몇개 사고 나왔다. 당시에 크레인 게임에 흠뻑 빠져있던 나는 일단 어도어즈 아키하바라에 들어가서 크레인을 하나하나 보기 시작했다. 네코아츠메의 역장 고양이 크레인이 그럭저럭 뽑을 수 있을것만 같아서 돈을 넣고 시도해보기로 했다. 우여곡절 끝에 대략 1500엔 정도로 뽑기에 성공했다. 오락실 크레인 뽑기에 성공하면 지나가는 직원에게 이야기하면 해당 점포의 봉지에 담아주니 뽑기에 성공하면 지나가는 직원에게 말해주자. 그리고 크레인에 달려있는 고리나 이런건 반납해주도록 하자. 다시 매달거나 할때 사용할 수 있도록.
뽑았다~~!!!
그렇게 크레인을 하다보니 아뿔싸, 공항으로 돌아갈 금액이 없는게 아닌가.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예전에 에포스님이 알려주신 세븐일레븐 출금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만엔 단위로 출금이 되어서 너무 금액 단위가 커서 사용해 보지 않았는데, 일단 돈이 당장 없으니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혹시, 세븐일레븐과 같은 편의점에 있는 일본 ATM에서 혹시 돈을 출금 해야 할 일이 생겼을때 어떻게 뽑아야 할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외국어 서비스가 있어서 한국어로 다 써있기 때문에 한국어로 돈을 출금 할 수 있다. 굳이 일본어를 알지 않아도 돈을 뽑을 수 있다는 점이 독인지 꿀인지 잘 모르겠다. 출금할 방법이 있으면 어떻게든 뽑을 것 같지만.
만엔이 무사히 출금되어 다시 여유로워진 나는 부탁 받은 물품을 사러 아키하바라 로손에 잠시 들렀다. 아키하바라에 있는 로손은 약간 골목쪽에 위치해있는데, 인테리어가 드래곤 퀘스트테마로 되어있다. 전체적으로 마스코트격 캐릭터인 푸른색 슬라임으로 도배되어있다. 심지어 상품도 팔고 있으니 관심 있으면 가서 구매해보자. 심지어 바닥에 그려진 구매 줄 안내라인도 드래곤 퀘스트에 나오는 아이콘이다.
바닥 발판이 아이콘 모양!
부탁받은 오후의 홍차
그래도 시간이 조금 남아서 전부터 가보고싶었던 미스터도넛에 들렀다. 번번히 시간이 없어서 못 들렀던 곳인데 시간이 나서 내심 기뻤다. 커피 하나와 도넛 하나를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처음에 리필 되는 커피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말이 너무 빨라서 솔직히 못알아들었다. 그런데 대충 알았다고 하고 넘겼는데 알고보니 나중에 그게 리필 해드릴까요?라는 의미였었다. 앉아서 커피를 다 마시고 나면 조금 있다가 홀을 돌아다니는 직원이 말을 건다. '커피를 채워드릴까요?'
아마도 리필이 되는 커피는 아메리카노 종류인 것 같다. ブランドコーヒー?라는 이름이었던듯.
미스터 도넛에 앉아서 아키하바라를 돌아다니며애 사거나 뽑거나 한 물품들을 정리했다. 물품들을 정리하다 보니 회사에서도 연락이 와서 그것들을 처리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어느새 공항에 가야 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스터 도넛의 커피와 초코 폰데링
구매 했던 카드들
나리타 공항으로 가기 위해 다시 닛포리로 향했다. 닛포리에서 케이세이선을 탈까 어쩔까 고민하다가 아까 출금해서 여유도 생겼고, 한번도 안 타본 이동 수단을 이용해 보고싶어서 스카이라이너를 이용해 보기로했다. 저렴하게 타는 방법을 이용해 보고싶었는데 어떻게 하는지 잘 몰라서 헤매다가 겨우겨우 스카이라이너 표를 구매했다.
아키하바라의 풍경
요도바시 카메라 근처 통로에서 세인트 세이야 전시를 하고 있었다
스카이라이너는 개인적인 느낌으로 KTX랑 비슷한 느낌이다. 하얗고 매끄러운 앞 곡선을 가진 차체 위에 푸른색 도색이 되어있는 기차가 시간이 되자 매끄럽게 닛포리역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서서히 일어났다. 나도 그들과 함께 일어났다.
닛포리에서 역장고양이와 함께 기다림! (사실 수하물에 들어가지 않아서 들고 탐)
탑승중
도쿄의 스카이라이너, NEX, 오사카의 난카이쾌속 같은 열차같은 경우에는 주로 공항에서 이용하는 고객이 많기 때문에 칸 가장 앞쪽에 짐칸이 따로 있다. 짐을 놓고 싶다면 앞에 있는 바를 살짝 들고 캐리어를 밀어넣고 내리면 된다. 생각보다 고정이 잘 되어 걱정 할 필요 없다. 짐이 작다면 굳이 놓을 필요 없지만 짐이 크다면 앞에 놓는게 더 편리하다.
이런 식으로 열차 칸 가장 앞에 캐리어를 둘 수 있는 곳이 마련되어있다
창측에 앉으면 이런저런 구경거리가 많다
나리타에 도착해서 먼저 탑승권 부터 끊기 위해 JAL 서비스 에리어로 향했다. 줄을 서려니 안내 직원이 QUIC이라는 서비스를 먼저 안내하길래 (아직도 이게 뭔지 잘 모르겠다) 이걸로 먼저 여권을 확인하고 탑승자를 확인했다. 그리고 수하물을 맡겨야해서 다시 또 줄을 섰다. 뭐하러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째서인지 티켓이 두개 나왔다. 나는 처음에 이걸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는데, 이 티켓 두개의 의미를 나중에 알게 되었다.
수하물을 맡기면서 자리를 어디로 지정해 드릴까요 라는 직원에 물음에 창가쪽을 부탁드린다고 하자 직원이 남는 자리가 문옆자리 뿐이라고 하시면서 이 자리에는 일본어가 가능한 분(보통은 일본 사람들)을 먼저 안내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이 자리에 탑승한 사람들이 비상사태에 직원들과 함께 탑승자들의 비상탈출을 도와야 하기 때문에 일본어가 가능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 일본 국적 항공기라 그런가 일본어가 가능한 직원이 많아서인지 일본어 가능자를 우선시 하는듯 했다. 그러나 애초에 내가 일본어로 직원과 대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직원이 손님께서는 앉아도 별로 상관없을것 같다면서 잠시 위에 물어보겠다면서 전화를 걸었다. 위에서 오케이가 떨어지자 나를 그자리로 안내해 주었다.
그리고 나온 두번째의 티켓에 대해서 이걸 저 위에서 쓸수있는지에 대해서 물어보자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해주어서 기분이 좋았다. 나는 처음에 JAL기에서 저녁시간에 맞춰서 서비스인줄 알았는데... 이게 지연 보상일줄은 전혀 몰랐기 떄문에. 일단 올라가서 식권 티켓도 생겼고, 시간도 꽤 남았기에 가서 밥을 먹기로 했다. 어떤 식당에 들어갈까 고민하다가 한 식당에 들어갔다. 카츠를 전문으로 하는 집인 것 같았다. 1500엔의 상한선이 있었기 때문에 어떤걸 먹을지 고민하다가 연어 카츠를 골랐다. 연어로 카츠를 만드는건 처음봐서 궁금한 마음에 시켜봤는데 꽤 맛있었다.
통로측 자리를 위한 안내서
연어카츠
밥을 꽤 여유롭고 천천히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시간이 좀 남아서 나리타 공항 4층을 좀 돌아보았다. 포케센의 피카츄를 구경하다가 서점에 들어가서 책도 한권 샀다. 라스트 코드라는 추리물을 구매했다. 일본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면 책 커버를 항상 싸주는데 구매할 때 마다 커버를 싸달라고 부탁한다. 서점 마다 다른 책 커버를 보는 재미와, 책 커버가 손상되는걸 방지해주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구매한 책. 커버도 예쁘다.
책까지 구매를 하고 입국심사를 하러 갔다. 전자 기기를 정리해 넣고 검색대를 지나려는데 삐삐 소리가 울리는 것이다. 왜 울리나 해서 봤더니 차고 있던 시계가 걸린것 같았다. 다시 한번 재 확인하자 시계라는걸 확인한 직원이 보내주었다. 게이트 앞에서 느린 엔카를 들으며 책을 읽고 있자니 서서히 출국 시간이 다가오는데 아무런 게이트 오픈이 없길래 뭔가 이상해서 비행기 표를 다시 확인해보니 아뿔싸, 비행기가 지연되어있는게 아닌가. 세상에... 거기다 다시 한번 게이트 앞을 보니 지연되어있다고 써있기까지 하고. 여기서 계속 앉아있다가는 허리가 아플것 같아서 좀 더 편한 자리를 찾기 위해 걸었다. 나리타 공항 탑승구로 걷다 보면 도중에 카페가 있고 굉장히 넓은 자리가 있는데, 1인석으로 꾸며져 있는 공간이 있어서 그곳에서 편안하게 시간을 보냈다. 심지어 콘센트도 있었다. 와이파이를 늦은 시간까지 해 두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나리타 공항 게이트 사이의 통로. 깔끔하다.
1인석 자리에서 이렇게 놀 수 있다. 오래 기다려야 하면 커피 시키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커피를 한잔 시키고 그림을 그리며 라인을 하고 시간을 보냈다. 괜히 노트북을 수하물에 부쳐 보냈다 후회하면서. 하필 이런때 콘센트나 이런걸 다 수하물에 보내버린단 말이지. 그리고 드디어 비행기 표에 적힌 시간이 다가와서 다시 게이트로 향했다. 그런데 30분 전이 다되어가는데도 뭔가 이상했다. 게이트에서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이다. 다시 한번 다가가 표지판을 보니 게이트가 아예 바뀐게 아닌가. 큰일날 뻔 했다.
게이트를 이동하려고 하던 찰나에 마음에 걸리던 부분이 있었다. 내 앞자리에서 수다를 떨고 있던 한국인 여자 두분이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게이트 앞 대기석 앞자리에 앉아있던 두사람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아마도 나랑 같은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인것 같았다. 그런데 게이트가 바뀐걸 모르는 것 같아서 이동 전에 혹시 몰라 말을 걸어 보았다.
"저 혹시 저랑 같은 비행기신가요?"
두 사람이 들고있는 비행기 표를 대조해 보니 비행편이 동일했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처음에는 내가 모르는 사람한테 왠 오지랖인가 싶어서 물어보지 말까 했는데, 되려 조금 전의 나에게 이 사람들에게 물어보려는 생각을 하고 이야기를 꺼낸게 다행이었다.
"지금 제가 확인해봤는데 안내판에 게이트 번호가 바뀌어 적혀 있어요. 여기 계시면 안되요. 저랑 같이 게이트 바뀐곳으로 이동해야 해요."
그러자 두 분이 깜짝 놀라며 자기들의 짐을 챙기며 일어났다. 나도 서둘러야 했기 때문에 두 사람을 데리고 게이트 방향을 가르키며 두사람을 안내했다. 정말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하며 나와 함께 바삐 발걸음을 재촉했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게이트 사이의 거리가 꽤 됐지만, 다행히 딱 맞게 입장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내가 도와준 사람 둘은 나보다 입장 티켓이 뒷 자리였는지 먼저 가서 줄을 섰다. 나는 조금 더 앞이라 나중에 입장했다.
입장해서 자리에 앉았더니 왠 노신사분께서 내게 말을 걸었다. 자리를 바꿔달라는 것이었다. 왜 자리를 바꿔달라는지 이해가 안되서 멍때리고 있었더니 내 옆자리에 사모님께서 타고 계셔서 같이 앉고 싶으셔서 였던것 같다. 난 혼자와서 굳이 그 자리를 고수할 이유가 없어서 흔쾌히 바꿔드린다고 했다. 연신 고맙다고 해주셨다.
기내식으로 밥을 주었다. 전체적으로 볶음밥에 반찬이 나왔다. 저녁을 이미 먹고 나와서 허기는 가셨지만, 나오는 식사는 거절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 나이기에 당연히 기내식도 다 먹었다. 기내식을 줄때 마실 것도 같이 주는데, 평소에는 커피를 주문 했지만 오늘은 왠지 기분이 좋아서 들뜬 마음에 맥주를 달라고 했다. 승무원이 건네준 맥주는 기린이었다. 한번도 마셔본 적 없는 기린 맥주를 한모금 들이켰다. 목넘김이 괜찮아서 맛있다고 생각하며 구매한 책을 읽으려는데 서서히 취기가 오르면서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아 괜히 시켰다! 싶어서 많이 후회했다. 다음엔 절대로 맥주 시키지 말아야지. 나도 맥주 마실때 얼굴 안붉어지고싶다.
기내식
슬슬 도착하려는 듯 하는 때, 직원들이 뭔가를 나눠주고 있었다. 프린트 된 종이 보니 지연에 따른 교통비 지원에 대한 안내였다. 세상에. 이런건 처음 봐서 컬쳐쇼크였다. 괜히 비싼 항공사를 타는게 아닌가 싶을정도다. 오늘 집에 돌아가는데 사용한 교통비 영수증을 첨부해 보내면 10만원 한도내로 환불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윽고 긴 비행 시간이 끝나고 무사히 인천공항에 착륙하였다. 인천공항에 착륙해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가족들이 너무 늦어서 데리러 와 주기로 했기 떄문이었다. 비행 도중에는 연락을 아예 할 수 없어서 얼른 착륙하자마자 연락을 넣었다. 중간 자리여서 꽤 빨리 내릴 수 있었다. 내려서 발걸음을 서둘러 빠르게 입국심사를 처리했다. 매번 출입국 할때마다 느끼는거지만 빠른 출입국 심사는 역시 해두는게 도움이 많이 된다.
3시간 연착 끝에 무사히 인천공항에 도착
수하물을 챙겨서 세관 신청서를 내고 나오니 가족들이 반겨주었다. 빨리 와이파이를 반납하고 차를 타고 인천공항을 떠났다. 다음날 회사를 나가야 되는 사실이 싫었지만 그래도 만족스럽게 다녀온 여행이었다. 다음번에도 기회가 된다면 이런 여행을 또 가보고싶다. 돈만 여유롭다면~;